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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지사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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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억 속의 춤 - 한국춤 100년의 유산 전시 연장 (~5.31)

  • 구분 예술가의집
  • 조회수 8716
  • 작성일 2012.02.07
2012 예술가의집 명예의 전당 기획전 <기억 속의 춤, 한국 춤 100년의 유산> 전시를 2012년 5월 31일까지 연장합니다. 2012년도 예술가의집 명예의 전당 기획전, 기억속의춤 한국춤100년의 유산, 일정:2012년 2월 8일(수) ~ 4월 28일(토), 장소:예술가의집 2층 명예의 전당 전시 관람시간:월-토요일 10:00-19:00(일요일, 공휴일 휴관), 관람은 무료입니다. 전시를 열며, 한국문화예술위원회는 우리나라 문학, 연극, 무용분야에 훌륭한 업적을 남긴 예술가들을 기념하기 위해 조성한 예술가의집 명예의 전당에서 2012년 첫 전시로 <기억 속의 춤 - 한국춤 100년의 유산>전을 개최합니다. 춤자료관 연낙재와 공동으로 주최하는 이번 전시는 근대 서양무용 도입, 새로운 무용사조의 탄생과 진화과정 등 한국 춤 100년의 역사적 흐름 및 발자취를 폭넓게 조망하는 자리가 될 것입니다. 전시 기간에는 ‘한국근대무용사의 재발견’을 주제로 한 학술세미나를 비롯하여 춤선구자의 업적을 되짚어보는 ‘영상으로 보는 춤의 거장 四人四色’ 등 다채로운 행사가 마련됩니다.
춤자료의 시각화, 역사화를 모색하는 이번 전시는 한국 최고의 춤컬렉션을 자랑하는 국내 유일의 춤자료관 연낙재 소장자료를 중심으로 엮어집니다. 한국춤 100년의 유산을 조망하는 이번 전시를 통해 무용예술의 기록적 가치와 문화유산의 향훈을 느껴보시기 바랍니다. 제1기 서구적 충격, 신무용의 탄생, 1900~1945,
전통사회에서 근대사회로의 이행기, 서구적 충격이 낳은 신무용(新舞踊)의 탄생은 본격 예술춤의 탄생을 예고했다. 1926년 3월 21일 경성공회당에서 개최된 일본무용가 이시이 바쿠(石井漠)의 공연은 서양 모던댄스의 이식으로 커다란 충격을 안겨주었다. 이후 최승희·조택원이 일본에 유학, 그의 문하에서 춤을 체득하고 신무용이라는 새로운 춤사조를 창출했다. 최승희·조택원은 전통의 현대화, 서양무용의 한국화를 화두로 서구식 극장무대에 걸맞은 새로운 공연미학을 추구했다. 일제강점기 한국춤의 세계화를 표방한 최승희·조택원의 활동으로 동양문화권 내에 존재했던 한국 춤은 미몽(迷夢)에서 깨어나 세계 보편사적 지형에 합류하게 되었다. 한편, 배구자는 민족성향의 춤활동과 동양극장 설립을 통해 근대 공연예술사에 큰 획을 그었으며, 전통무악의 거장 한성준이 전통무용을 집대성하고 무대양식화하는 업적을 남겼다. 한성준, 최승희, 조택원, 배구자 등의 활약으로 20세기 극장무용예술의 신기원이 마련됐다. 제2기 폐허를 딛고, 새한국무용 건설, 1946~1975
8·15 광복직후 좌우익의 이념대립으로 인한 사회적 혼란은 한국 무용계에도 크게 영향을 미쳤다. 극심한 사회적 혼란 속에서 일제강점기 신무용을 창출한 최승희·조택원이 국내 무용계를 떠나게 된다. 함귀봉이 조선교육무용연구소를 설립하여 대학생을 연구생으로 입학시켜 교육무용과 창작무용을 가르쳤다. 일본 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한동인이 서울발레단을 창단하여 서양 고전발레의 재현과 창착발레를 통해 이 땅에 발레예술을 정착시켰다. 6·25전쟁이 발발하자 조동화가 주축이 되어 한국무용단을 창단하여 피난길에 올랐고, 무용계의 중심이 대구·부산으로 이동된다. 6·25전쟁 이후 폐허를 딛고 새한국무용 건설을 위한 활동이 송범, 임성남, 김백봉, 김문숙, 전황, 주리, 한영숙, 김진걸, 강선영 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특히 1960년대 초반 국립무용단 창단, 무형문화재 제도의 성립, 이화여대 무용과 개설, 동아무용콩쿨 창설 등 새로운 제도의 생성은 새한국무용 건설을 견인하는데 일조하였다. 제3기 춤아카데미즘, 예술춤의 진화, 1976~현재
1970년대 중반 창무회 창단을 계기로 신무용시대가 종식되고 한국창작춤이라는 새로운 춤사조가 등장한다. 한 시대를 풍미했던 신무용이 퇴조하고 대학을 중심으로 한 동인무용단체 활동이 활발하게 전개된다. 1976년 월간 《춤》지의 창간으로 무용평론가의 배출과 함께 무용비평이 독자적 영역으로 확립되었으며 춤평단이 조성되었다. 춤의 지성화와 사회적 위상강화가 모색되고 창작과 비평이 상호 긴장관계를 조성하며 춤르네상스기를 이끌었다. 1979년 대한민국무용제가 창설되면서 춤의 창조성이 새롭게 부각되었다. 86아시안게임, 88올림픽을 계기로 해외무용 교류가 활성화되었고, 해외유학파의 활동과 함께 1990년대 포스트모더니즘 영향으로 현대춤의 창조성이 다양화되었다. 1992년 정부의 ‘춤의 해’ 지정, 한국예술종합학교 무용원 설립에 이어 1990년대 중반 소위 독립안무가세대가 등장하여 한국 춤의 지형변화를 주도했다. 한국춤연표

담당 : ☎ 02-760-4717 / 이연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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