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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착화점’, 서로 다른 매체로 발화되어 인사미술공간에 옮겨 붙다.
조회수 1530 작성일 2017/03/24
첨부

‘착화점’, 서로 다른 매체로 발화되어
인사미술공간에 옮겨 붙다.



그 어느 때보다 위기에 국면한 요즈음, 수많은 과제 속에서 우리에게 전달하는 묵직하고 직시적인 메시지가 범람하고 있다. 혼란스러운 시대의 현 주소 위에 칼날처럼 파고드는 피곤한 텍스트들을 벗어나, 하나의 사건을 다양한 매체들로 해체시키기 위한 발화 작업을 편안한 시선으로 펼쳐놓은 전시가 있다.

창덕궁길에 위치한 인사미술공간(Insa Art Space)에서 2017년 3월 17일부터 5월 6일까지 열리는, 2016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시각예술분야 성과보고展 ‘착화점’



물질이 타기 위해 필요한 최저 가열 온도로 자연 발화 온도라고도 하는 착화점은 가열 방법, 공기의 혼입 정도, 대상의 재질이나 형태 등의 조건에 따라 변화한다. 미술이라는 장르 안에서 선택된 소재인 ‘화재사건’이 최저 가열 온도로 다양한 매체들에 옮겨 붙어 어떻게 구체화되는지, 강렬한 정체성을 가진 ‘문래동’이라는 지역의 이미지가 어떻게 변화하고 있는지 주목하게 한다.



[기획자가 수집한 사진들을 활용한 포스터의 이미지]



‘착화점’은 2016년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 시각예술분야에 참여한 큐레이터 중에서 전시지원 대상자로 최종 선정된 2인인 신동혁, 송지현 중, 신동혁이 기획한 전시이다. ‘한국예술창작아카데미’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에서 운영하는 차세대예술가육성사업을 2016년부터 아카데미 방식으로 확대 개편한 사업으로 문학, 시각예술, 연극, 무용, 음악, 오페라, 무대기술, 창작기획 분야로 구성되었다. 만 35세 이하 차세대 예술가들이 참여하여 창작 연구와 작품 제작을 진행하면서 작년 12월부터 연극을 선두로 하여 순차적으로 다양한 무대에 결과물을 선보이고 있다.



착화점



이번에 선보이는 무대는 2000년에 유망한 신진작가를 지원하는 전시공간으로 출발한 인사미술공간이다. 종로구 창덕궁길에 위치해 있어 가는 길목을 따라 고즈넉한 정취를 맛볼 수 있다.

역량 있는 신진작가 및 기획자에게 창작 환경 및 전시 활동을 지원하는 것을 목표로, 매년 신진작가 및 독립 큐레이터들의 도전적이고 실험적인 제안들이 공모를 통해 선정되어 전시되는 만큼 관심을 가져볼만 하다.



착화점



문래동의 공업단지는 농경시대를 지나 공업이 우대받기 시작한 근대화의 흔적으로 아직까지 골목 사이사이에 그 세월을 간직하고 있다. 예술과의 만남으로 새로운 역사를 써내려가고 있는 현재의 모습과는 달리 공장들이 집약되었던 1970년대 문래동은 노동자와 기계 그리고 철의 세계라고 불리기도 하였다. 소규모 철강공장, 철제상들이 밀집한 문래동은 예술가들의 창작촌, 공공예술, 예술과 철공소들의 만남 등이 활발하게 이루어지는 지역이다.



착화점



철, 유리, 금속 등 공업 재료들과 시멘트, 벽돌 등 노후된 건축 재료가 예술 재료들로 전시에서 자주 사용되면서 예술과 공업이 공존하는 문래동을 상징적인 이미지로 정형화시켜, 공간의 실질적 상황을 왜곡하고 국한시키고 있는 것이 아닌가에 문제의식을 가진 신동혁 큐레이터. 그는 문래동이라는 지역성을 강하게 대변하고 있는 소재를 좀 더 보편적으로 이끌어가면서 정형화된 프레임을 탈피하고자 ‘한 예술가가 문래동에서 겪은 원인불명의 화재사건’을 문래동의 예술 재료이자 전시의 주요 소재로 선택해 문래동 화재사건이 어떤 식으로 변하고 있는지를 전시를 통해 환기시키고자 하였다.



착화점

이에 문제의식과 전시 소재를 공유한 작가들은 문래동이라는 강한 지역성에 한계를 짓지 않고 화재사건을 시발점으로 두고 하나하나 해체시켜 나가는 작품들을 선보였다. 따라서 우리는 계속 드러날 수밖에 없는 상징적인 소재들을 어떻게 숨기는지를 전시에서 확인할 수 있다. 고로 ‘착화점’은 화재사건이라는 키워드를 가지고 펼쳐놓은 후에 작가들이 어떻게 자신의 작업으로 만들어 미술로 표현하는지를 조각조각 붙여놓듯이 구성한 전시라고 볼 수 있다.



전시장은 총 3층으로 지하 1층부터 지상 2층까지 착화점이 펼쳐진다. 인사미술공간 출입구 앞에 놓인 브로셔를 손에 들고 한발 내딛어 들어가면 바로 전시장이 시작된다.



공간을 전체로 봤을 때 지하에서 뿌리처럼 올라와서 헤비급이 큰 줄기를 잡고 위로 가지처럼 뻗어서 열매가 맺힌다고 연상하면 전시를 보는데 도움이 될 테다.



착화점



전시장 1층은 시각예술의 체급(體級)을 늘려보자는 취지하에 결성된 헤비급(윤하민, 신은주, 박한결)이라는 단체의 설치, 평면, 영상 작품들로 이루어져있다. 매체에 대한 고민을 하는 이 단체는 화재사건을 듣자마자 다른 국면으로 전환시켰다. 피해자들이 항의할 곳조차 없는 원인을 알 수 없는 화재사건의 특정부분인 ‘피해자는 있는데 가해자가 없다’는 사실에 대한 메시지와 ‘아직 아무도 열어보지 못한 수몰지역의 비디오 테잎이 있다’는 두 이야기가 작업의 중요한 시발점이 되었다. 재난의 성격이 강한 수몰지역과 화재지역이 같다고 본 것이다. 인간이 그런 상황에 처했을때 어떻게 생각하는지에 대한 것으로 부터 출발하여 대처가 아닌 상상을 기반으로 한 아카이브 영상으로 시각화하였다.



착화점



물과 불이라는 소재를 가지고 작업을 구상하였고, 피난처가 되는 근원인 우주를 포함하여 물과 불 그리고 우주를 절대적인 측면으로 다가오는 순환 고리로 보았다. 상영되는 영화는‘수몰지역과 화재지역을 떠난 그 사람들이 모두 어디로 갔을까?’라는 질문에서 시작된 이야기로 불과 홍수를 피해서 달에 도달하기까지의 여정을 9분 30초로 담았다. 옆에 붙어있는 텍스트는 색과 우리가 접할 수 있는 물성으로 이루어져있는데, 시나리오 아카이브와 배경소스가 된다.



착화점



헤비급이 영상작업을 할 때의 스튜디오를 재현해 놓은 파란 공간과 재난에 휩싸인 상상을 감각적으로 뿜어서 탄생한 판화는 이야기를 하는 것이 아니라 미술로 시각화하여 한 면을 채워 보여 준다. 제작된 대형 카트는 가장 멀리 공을 던지듯이 던져놓고 다른 작품들을 유추해갈 수 있도록 위치해 놓았다.



착화점



3월 17일 오프닝 당일, 신동혁 큐레이터의 설명을 들으며 집중해서 관람하고 작가들과 대화하는 한국문화예술위원회 박명진 위원장의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뿌리의 발생지인 지하로 내려가면 12분 30초간 상영되는 임영주 작가의 투 채널 비디오 ‘워터, 미스트, 파이어, 오프’를 접하게 된다.



착화점



화재사건이라는 강한 내용을 작가는 어린아이의 불장난같이 가볍게 인지하고 불과 물의 대화를 두 개의 채널로 구성하여 보여주고 있다. 심각한 불의 이야기에 대한 긴장감을 완화시키고 불장난하는 어린아이의 심리로 출발한 불의 꿈, 화재 시뮬레이션 등을 담은 영상, 사운드, 설치로 구현되었다.



착화점



어찌된 것인지 기억은 잘 안나는데..
제가 뭘 던졌습니다.
그게 앞쪽 숲에 떨어졌는데
연기가 되고 불이 되었습니다...........

그래서 순간은 어, 불났네!
어쩌지??????? 하며 당황했는데
연기가 막 나고 불이 활활 타오르는 걸...
나중엔 어쩌지? 어쩌지? 하다가
그냥 바라만 보게 되었어요.
어쩌지? 중요한 날인데. 면접날인데 말이죠
기억이 나지 않는다는 것은 착각입니다.


보세요. 기억하고 있습니다.


모든 것은 순간입니다.
당황하지 마시고 심호흡을 하세요.

잘하셨습니다.
밤이었습니다.
성화대에 불이 하늘 높이 타오르고 있는데
거기다 제가 휘발유(자세히는 라이타 기름)을
부었더니 광! 광! 광! 세 번의 폭발음을 내며
활활 타오르는 것이었어요.
이름을 널리 알릴 수 있는 기회입니다.
자, 준비가 되었나요?
광!광!광!
축하드립니다.


특히, 지하 1층은 안개 속에 자욱하게 싸여 몽롱하고 나른한 기분을 동반함과 동시에 정령들이 기운을 불어 넣어 큰 뿌리처럼 위로 올라가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을 수 있도록 연출되어있다.



열매를 맺는 2층에서는 박천욱, 이세림, 이윤서 작가의 작품을 만날 수 있다.



착화점



중심에 설치된 오브제는 기획의도와 다른 작업을 추구하는 박천욱 작가의‘주체롭게 자라다1’로써 화재사건을 통해 작업실을 잃어버린 작가의 정체성에 대한 질문을 던지고 있다. 작품에 접근하는 방식을 중요시 생각하는 작가는 형식적인 측면에 집중하여 작품이 전시에 타는 것과는 상관없이 남아있는 것을, 소멸되지 않는 것을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화분, 조화, 조명, 물조리개, 테이블로 구성되었고 생명과 소멸이 대칭되는 설치작업으로 보여진다. 이 작품을 다른 작가들이 화재현장에서 진주를 꺼내는 기분이라고 이야기하기도 한다고...



화재사건을 좀더 깊이 알고있는 이세림 작가는 원인 불명의 화재, 가해자는 사라졌다는 이야기 그리고 다시 사라진 불과 불이 사라진 자리에 남은 것은 잔해 뿐이라는 생각 속에서 작업을 구상하였다.



착화점





화재사건이 일어난 순간부터 그 주변의 이야기를 작업으로 활용하여 두 개의 공간을 연동한 설치작업‘사라진 불’을 선보였다. 비어있는 공간(사진 좌)을 지나가는 불특정 다수의 어떠한 행위들이 잔해들이 있는 공간(사진 우)에 허상으로 비치면서 맴돌고, 중심에 모아져있는 잔해들은 불특정 다수에 의해 흐트러져 변형되면서 없어질 수도 있는 비어있는 공간과 텅빈 감정을 이야기하고자 한다.



마지막으로 이윤서 작가는 회화를 통해 무차별적인 사건에 대한 정보들 안에서 인상적인 부분을 포착하여 전달하고자 한다.



착화점



끊임없이 접하게 되는 다양한 종류의 정보들을 채집하고 속도감있게 기록한 작가는 화재 사건의 이미지와 그로부터 파생된 관련 정보와 엉뚱한 이야기들을 작업 속에서 덮어 버리기도 하고, 뒤섞기도 한다. 기획자로부터 듣게 된 문래동을 바라보는 제 3자의 입장에서 객관적일 수 없는 함몰된 시선을 과감한 터치로 보여준다.



착화점



신동혁 큐레이터는 작가들과 어떻게 기획하고 어떻게 준비하는지를 이야기하고 싶었다고 한다. 직접적으로 들어가기보다는 ‘화해’라는 이름의 극집으로 구성하여 무료 비치하여 배포하고 있다. 전시를 준비하면서 이루어진 모든 진행상황과 작가들과의 대화를 텍스트화해서 변형을 하였고, 각자의 색에 대한 얘기를 하고 있다. 재해석한 부분도 있음을 극집을 통해 확인해 볼 수 있고, 전시를 위해 모인 다양한 목소리들이 이해충돌과 타협의 과정을 딛고 ‘착화점’의 구현을 향해 서로에게 ‘착화점’이 되어간 흔적이 이 책에 담겨있기에 방문하여 관람 동선의 끝에서 손에 넣기를 바래본다.



  • 위치: 서울 종로구 창덕궁길 89 (구 원서동 90)
  • 문의: 02-760-4722
  • 관람시간: 11:00-19:00
  • 휴관일: 매주 일요일, 월요일, 구정, 신정, 추석 연휴
  • 관람료: 무료
  • 가는 방법. 지하철 3호선 안국역하차 3번 출구 - 현대빌딩 방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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